이희호 여사 “역사속에 숨겨진 정치 秘史 이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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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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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와 함께했던 파란만장한 46년…자서전 <동행> 출간


“요즘 가끔 남편과 함께 우리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그 끔찍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우리 내외는 수십 년에 걸쳐 고난과 빈곤과 모함을 헤치고 살아 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86)가 최근 자서전 <동행>을 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라는 부제를 직접 달아주었다.

이 여사는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이 책은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싸우고 희생한 분들과의 동행을 기록한 책"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념회에는 김 전 대통령을 포함한 권노갑ㆍ한광옥ㆍ정균환 전 의원, 박지원 의원 등 정계 인사를 비롯 여성계·학계·재야 인사 등 6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여사는 특히 “여기저기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이 나온다”며 “우리 국민이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희생해온 과거를 생각할 때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버락 오바마의 미국대통령 당선에 대해 “링컨의 노예 해방에 버금가는 위대한 혁명”이라며 “그동안 긴장관계에 있던 남북관계, 동북아의 평화안보체제 같은 문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되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행>에는 이 여사의 유년시절, 김 전 대통령과의 만남,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육영수 여사, 전두환 전 대통령, 남북정상회담 등 알려지지 않은 정치적 뒷얘기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여사의 자서전을 통해 정치권의 뒷얘기들을 살펴봤다

‘사형수로부터 대통령이 된 사람의 동반자’


“젊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처음으로 내 생애를 기록하게 됐습니다.” 최근 자서전 ‘동행’을 출간한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지난 11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여사는 “나 개인의 기록이지만 파란곡절 우리 현대사의 뒤안길이기도 하다. 붓을 든 까닭은 후세에게 그 역사를 편린(片鱗)이나마 남겨놓고자 함이다.”라고 자서전을 쓴 까닭을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4년 전 자서전 집필을 결심하고 3년여 힘껏 작업하여 마침내 빛을 보게 된 이 자서전은 파란만장의 역정을 밟아온 정치인의 정신적인 동지이자 삶의 동반자로서의 자신의 생애를 찬찬히 돌아보고 있다.

이 여사는 책머리에서 밝혔듯이 지난 1962년 결혼 이후 ‘사형수로부터 대통령이 된 사람의 동반자’로 46년의 세월을 보냈다. 정치인의 아내이기에 앞서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이며 민권(民權)을 위한 운동에 진력했던 이 여사의 자서전 <동행>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유신ㆍ군사정권 등을 거쳐 영부인이 되기까지 격동의 한국 정치사와 민주화 운동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여사는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고녀와 이화여전 문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램버스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미국 스카릿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노스이스턴대학,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 등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YWCA연합회 등의 단체에서 가족법 개정 운동, 인권 운동 등에 헌신했다.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하여’(1989) ‘나의 사랑, 나의 조국’(1992) 등의 책을 지었다.

이 여사는 자서전에서 ‘민주주의’와 ‘여성’이란 두 단어를 강조했다. 또 “이제 젊은이와 여성도 국정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시대가 됐다”며 저서에서 “앞으로 다가올 딸들의 세상이 더욱 환하고 평화롭기를 기도한다”고 썼다.

김대중·이희호 러브스토리..."DJ에게 바가지 긁어본 적 없어"

▲ 김대중 전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결혼식

그 당시에 아이가 둘 딸린 젊은 정치가 김대중과 YWCA 총무이던 미혼의 유학파 인재 이희호의 결혼은 놀라움 자체였다. 이희호의 주변 선후배들은 모두 그 결혼을 말렸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와의 첫 만남은 부산에서 시작됐다. 1951년 피난지에서 열린 대한여자청년단 회식자리에서 만났다고 한다. 이후 면우회 모임을 계기로 자주 만남을 가졌고 이승만 대통령 개헌 소동과 ‘정치 파동’에 함께 분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여사가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이들의 짧은 이별은 시작됐다. 이후 유학에서 돌아온 이 여사는 길을 가다 종로에서 6년 만에 김 전 대통령을 만나게 됐다.

이 여사는 “근처 다방에 들어가 잠깐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시 헤어졌다”며 “풍문으로 그동안 정치에 입문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다소 힘들어 보였다”고 회고했다.

실제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60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했고 부인과 사별했다고 한다. 이후 김 전대통령은 5·16 군사 쿠데타로 인해 민주당 간부로서 부패와 용공 혐의로 두 차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당신도 알고 있듯이 나는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다. 그것은 이 땅에 참된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다. 나는 당신을 필요로 하며 나와 아이들을 돌보아주기를 바란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이 여사에게 청혼을 했다.


젊은 김대중에게 정치가 꿈을 이루는 길이며 존재 이유였다면, 여성 리더 이희호에게는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 중의 하나였다.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보다는 서로가 공유한 꿈에 대한 신뢰가 두 사람을 동여맨 끈이 되었다.

한편 이 여사는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으로 ‘남편이 사형선고를 받았던 때’를,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때와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를 각각 꼽았다. 이 여사는 "나는 바가지를 긁지 않음으로써 남편에게 도움이 된 아내"라며 남편과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동행' 그 자체"라고 말한다.

전두환 대통령과의 만남... “DJ에 대한 석방은 당장 어렵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독대한 일화도 소개했다. 김 전 대통령이 ‘내란 음모죄(1980년 신군부 세력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김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기 위해 민중을 선동해 일으킨 봉기’로 조작된 사건)’로 구치소 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1982년 당시 권력 실세였던 허화평씨의 주선으로 2시간 남짓한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처음 만났던 전 전 대통령은 “마치 동네 복덕방 아저씨가 아주머니 대하듯 일상적으로 대했다”면서 “때로는 바짓자락을 올리고 다리를 긁적거리면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독특한 분”이라고 평했다.

 전 전 대통령은 “이 여사 고생이 많으시지요”라고 운을 뗐고 이 여사는 “석방해주시면 감사합니다”고 전했다. 전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그건 나 혼자서 결정 못한다”며 “다른 사람들도 있고 해서 석방은 어렵다.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전직 대통령을 초청해서 다시 만난 자리에서도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인상은 첫 만남처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여사는“대통령 테이블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리고 배우자 테이블에서는 이순자 여사가 화제를 유쾌하게 이끌었다”고 평했다.

육영수 여사 따뜻하고 반듯한 성품

이 여사는 남편의 평생 정적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에 대해서는 후하게 평가했다. “생전에 세 번 육 여사와 만났다”는 이 여사는 육 여사에 대해 "따뜻하고 반듯한 성품을 지녔으며 남편의 독재를 많이 염려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속의 야당"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육 여사는 따뜻하고 반듯한 성품을 지녔으며, 남편의 독재를 많이 염려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속 야당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분이다”라고 기억했다. 두 정적의 안사람으로서 여러모로 비교되었던 육여사는 공교롭게도 김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이 결혼한 날인 1972년 8월15일 운명했다.

한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고에 대한 회상도 있다. 그 당시“우리 내외는 ‘기쁘지 않으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박대통령의 불행한 죽음을 기뻐하지 않았다. 장기 독재의 종식은 환영할 일이었지만 ‘암살’이라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는 비열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DJ·YS, 반독재 빼고는 물과 기름”


 정치적 동지이자 평생 라이벌이었던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기록도 눈길을 끈다. 이 여사는 “두 사람은 독재 앞에서는 동지였다. 그러나 그 밖의 문제에서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였다”라고 평했다.

이 여사는 “시작은 같았다. 195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거제도에서 자유당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한 사람은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순탄한 주류의 길을 걸었고, 또 한 사람은 가시밭길 비주류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했다.

군사정권 이후에 김대중은 재야와 감옥에서, 김영삼은 제도권과 집에서 독재와 투쟁했다. 동교동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면, 상도동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생존 방식을 고민했다.고 회고 했다.

이 여사는 이어 “두 사람은 성격 또한 달랐다. 한 사람은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해 단순 유쾌하고 즉흥적인 ‘감’의 정치인이었다. 또 한 사람은 자수성가해 집념이 강하고 논리적이며 ‘원칙’을 중히 여겼다.”고 썼다.

"김정일, 거침없고 자연스럽게 좌중을 휘어잡아"

이 여사는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직접 공항으로 영접하러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예전까지의 풍문과는 전혀 다른 인물”로 기억했다.

“그는 갈색 인민복식 점퍼 차림에 연한 색깔 렌즈의 금테 안경을 쓴 모습이었다.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참을성이 없고 신경질적’이라던 그간의 풍문과는 무척 다른 인상이었다.”고 했다.

백화원 영빈관에서는 미리 도착해 있던 김위원장이 이여사가 먼저 들어가도록 예우했다고 한다. “그는 대통령은 물론 장관과 수석 등 수행원들에게까지 두루두루 배려와 예의를 차리면서 좌중을 휘어잡고 주도했다. 거침없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무엇보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여유로움이 돋보였다.”고 전했다.

이 여사는 남북회담 당시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은 매우 인간적이면서 측은하게 묘사하기도 했다.“강행군을 마치고 5시쯤 숙소로 돌아오니 대통령은 아직 정상회담 중이라고 했다... 6시 전에 다시 회담장으로 갈 때는 지팡이를 짚어야 했다. 무거운 걸음을 떼는 그의 뒷모습이 무척 고독하고 힘겨워 보였다... 그날의 그가 결혼 생활 중 만난 가장 고독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한편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기록도 있다. 2000년 2월3일 미국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연사를 맡았을 때였다고 한다.“힐러리와는 두 번째 만남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가 퍼스트레이디로 끝날 사람이 아니라고 보았다. 능력 있는 여성의 야망은 격려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매우 유능하고 매력적인 여성이다. 전문직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영부인이 된 힐러리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힘이 느껴졌다. 그는 클린턴에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과 젊음을 겸비한 여성”이라고 평가했다.

2002년 두 아들 구속 뒤“부끄러워 국민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이 여사는 이번 자서전에 지난 2002년 두 아들 홍업·홍걸씨가 구속된 뒤 심적 고통도 담았다. “나는 기도로 나날을 보냈다. 부끄러워 국민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일정이 많은데 잠을 못 이루고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내가 죄인이라고 가슴을 쳤다. 셋째(홍걸)에 이어 둘째(홍업)까지 구속되었을 때는 숨이 막혔다. 물 한 모금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 내외는 말을 잊었다. 각자의 서재에서 따로 시간을 보내다 늦은 밤에야 안방으로 갔다. 북악산 기슭의 적막한 (청와대) 관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캄캄한 심연이었다. 나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평생 열심히 읽던 신문을 끊었다. 남편은 급속도로 쇠약해졌다. 의료진은 투석을 권했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국정원에서 보고를 받은 남편은 막내에게 수차례 경고를 했다. ‘최규선이하고 어울리지 마라’…. 미국에서 귀국하는 날 그는 아버지 보기가 두려워 청와대에도 오지 못했다. 친지의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홍걸이는 5월 16일 검찰에 출두했다. 그리고 18일 구속수감되었다. 한 달여 후에 둘째 아들도 구속되었다.

남편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둘째 홍업이가) 당뇨와 우울증 증세를 보여 가석방되었을 때였다. 나는 둘째가 보고 싶어 청와대로 오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누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큰절을 하려는데 다리가 굽어지지 않았다.

둘째가 그만 두 다리를 뻗고 우는데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아버지의 분노는 동교동으로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풀어지지 않았다.”고 참담한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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