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8일 원광대 특강은 참여정부평가포럼 강연에 대한 전날 중앙선관위 위법 판단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자리이자, 향후 대선 정국에서 각 주자들이 참여정부의 정책을 비판할 경우 가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개리에 재천명한 자리였다. 다음은 1시간 10분동안 행해진 원광대 강연 전문.<편집자 주>

“학여수여장 보니까 ‘명박’이라 써 놨던데...”

학교 들어오면 분위기가 참 그냥 좋고요, 그 다음에 이제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열심히 가르치시겠지만 학생들도 착하고 열심히 하는 것 같고요. 이제 옛날에 김용옥 교수도 와서 공부도 하고요. 근데 그런 느낌, 그게 사실인 것 같고요.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 원불교라는 종교가 주는 느낌이 있어서 아마 그런 거 아닌가 싶습니다.

제 주변에도 원불교 종교를 믿고 또 중요한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몇 사람 있는데, 그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중심이 분명한데 그러나 어떤 주장이 과하지 않고 합리적입니다.

그렇고, 무슨 말을 하거나 이론을 말할 때도 독선적이거나 극단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한테 신망이 있지요. 있고, 그러면서도 종교 전체의 활동을 보면 우리 사회에 소리 없이 많은 봉사와 기여를 하고 있어서 굉장히 믿음이 갑니다.

그러면 당신도 믿어라... (일동 웃음) 곤란하긴 한데, 제가 이제 성격이 게으르고 해서 그러지 못합니다만, 믿는 거나 다름없이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가르침은 다 비슷한 것이어서 저도 좋은 분들 영향을 받고 또 본받을 것 본받으면서 그렇게 삶을 진실하게 살도록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동 박수)

제가 1946년생입니다. 이 학교하고 나이가 같지요. 근데 이제 제가 명예박사학위를 100번째 받는다고 조금 전에 소개를 받았는데요. 그것도 참 기분이 좋습니다. 같은 값이면 ‘백’자 이런 거 좋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좋고, 그래서 오늘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단지 이제 걱정이 되는 게 하나가 오늘 학위수여장 보니까 ‘명박’이라 써 놨던데 제가 ‘노명박’이 되는가 싶어 갖고… (일동 웃음 및 박수) 하여튼 뭐 이명박 씨가 ‘노명박’만큼만 잘하면 괜찮습니다. (웃음) 그래서 그렇게 조금 자화자찬 같지마는 노명박만큼만 해라, 그렇게 하고 넘어가지요. (웃음)

넘어가고, 그 다음에 이제 학문적 업적이야 좀 없더라도 현실에서 현장에서 정치라도 좀 똑똑히 해야, 그래야 이제 박사 값을 하는 것인데, 요즘 제가 인기가 좀 별로 시원찮아서 학위 주신 분들께 이래 부담을 드리는 거 아닌가 싶어서 무척 마음에 걸립니다. 걸리는데, 저보고 자꾸 ‘국정 실패’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저는 어떻든 납득하지 않습니다.

저도 비교적 솔직해서, 잘못이 있으면 잘못이 있다고 하고 ‘이건 뭐 잘못 생각했다’ 말할 수도 있고 또 ‘이건 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별로 말할 게 없습니다.

제 욕심에는 부족함이 많이 있습니다. 국민들의 욕심에도 부족함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한 행동과 이룬 성과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정권이나 다른 나라하고 비교해서 말해야 될 거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요.

대체 비교해 보면 제가 민주주의를 어느 정권보다 잘못했습니까? 나라 경제가 어느 정권에 비해서 잘못됐다는 것이냐, 한번 그렇게 꼼꼼히 따져 보면, 뭐 그리 크게 자랑할 일은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실패라고 그렇게 매도될 만큼 그렇게 실패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머리부터 그런 것이지만 하도 억울해서 정책 투입이든 산출이든 정책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을 만한 모든 지표들을 다 모아봤습니다. 모아서 이 책에 담아 봤습니다. (‘있는 그대로 대한민국’ 책을 들어보이며) 실제로는 이 2배 정도 되는 별도의 책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프입니다. 그래프로서, 움직일 수 없는 지표로서 우리가 평가해 보자.

국정이라는 것이 모두가 지표로 그렇게 측량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지마는, 그러나 이걸로 한번 해 보자,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이것입니다. 형편이 안 되시는 분은 어쩔 수 없지만 형편이 되시는 분은 꼭 한 권씩 사서 보시고 (웃음) 저, 참 억울한 심정을 풀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웃음)

“돈도 걸지 않고 떠들어 쌌는 사람들 얘기는 소용없다”

여기 보면요, 성장률이 있습니다. 5%는 넘지를 못했습니다. 여러 얘기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성장률이 우리 경제성과에 유일한 지표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한 시기 성장률이 높이 올라가는 것은 그 정권의 공적에 의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노태우 대통령 때 성장률이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치솟았죠.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경제를 잘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은 또한 아닙니다.

정책 전체의, 경제에 대한 전망 전체를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 측정해 놓은 것이 주가입니다. 지금의 우리 경제가 아니라 앞으로의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 거냐, 우리 기업들의 수익이 어떻게 될 거냐 하는 데 대한 예측을 돈 걸고, 돈 걸고 예측을 말하는 것이 주식의 가격 아니겠습니까? 돈도 걸지도 않고 떠들어 쌌는 사람들 얘기는 소용없습니다.

자기 재산 딱 걸어놓고 ‘올라간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때 주가가 올라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요새는 좀 너무 많이 올라가서 제가 좀 걱정입니다. (웃음) 사실은 제가 올해 바랐던 것이 1500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원칙대로 했습니다.

저는 경제에도 원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만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도 원칙이 있고, 원칙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적절하지 않으면 정석이라고, 바둑에 비유해서 정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책이, 모범적 정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대로 했습니다. 남은 기간에도 그대로 할 것입니다.

이제 박사 학위를 받았으니까 기념 강연 아니겠습니까? 제가 상응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주 좋은 내용이었으면 좋겠는데 정치라는 게 다 여러 사람이 다 아는 일이어서 내용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강연하겠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읽을 것은 그냥 읽겠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라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이 쉽지를 않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지요. 세상 사랑하는 이치를 읽고 배우고 경험하고 그리고 크게 보고, 또 깊이 생각해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동안의 가치가 무엇인가, 사상이 무엇인가 많은 고심을 하고 있습니다만, 모든 가치와 사상은 한 가지 공통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근원에서는 각기 다르게 얘기하고 있지만 근원이 어디에 있든 바라보고 있는 목표는 인간의 행복입니다.

사람은 빈곤과 침략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을 극복하고자 공동체를 만들고 그리고 권력을 부여했습니다. 권력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지배와 억압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빈곤과 무질서 대신에 지배와 억압, 전쟁이라는 새로운 고통과 불안이 불행의 새로운 근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이 생긴 결과입니다.

빈곤과 전쟁, 지배와 억압으로 인한 고통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사에서 핵심적인 문제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사상을 창안하고 실험을 해 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씹을수록 더 맛이 있다”

근대 이후의 모든 사상은 결국 민주주의로 귀착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고의 사상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 세상은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만큼 발전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 민주주의인가? 다 아는 이야기인 것 같지마는, 실제로 가만히 따지고 보면 다 알지를 못합니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읽어 보면 소설보다 훨씬 재미가 있습니다. 깊이 들어가 볼수록 더욱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고 또 이치도 알게 됩니다. 민주주의는 씹을수록 더 맛이 있습니다.

왜 민주주의인가? 자유, 평등, 인간의 행복, 인간의 존엄 이것을 중심 가치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사상이다, 이런 정도로 말씀드리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그 이후 1919년에 바이마르헌법에서는 인간다운 생활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신분과 계급에 의한 지배구조에 근거한 특권을 철폐하고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한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번영에 적합한 제도입니다. 돈 얘기 하면은 사람들이 조금 결정(?)짓기가 어려운데요. 돈 좋아하지만 돈의 폐해가 많아서 돈 얘기하면 입장이 난처해지기도 하는 것인데, 그러나 번영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복에 결정적인 조건입니다. 근데 이 번영의 민주주의가 적합한 제도라는 것이지요.

우선 경쟁의 정치는 경쟁의 시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적합한 제도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존중합니다. 자유와 다양성은 창의의 원천입니다. 오늘날 경제의 경쟁은 창의의 경쟁, 혁신의 경쟁이지 않습니까? 민주주의야말로 창의를 꽃피우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그와 같은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자본 이론이 있습니다. 사회적 자본을 풍부하게 하는 제도가 민주주의입니다. 사회적 자본이 뭐냐? 신뢰, 원칙, 연대, 개방, 이런 개념을 사회적 자본이라고 합니다. 2000년에 브라질에서 세계경영경제학회가 모여서 경영, 경제에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사회적 조건이 뭐냐라고 했을 때, 사회적 자본이 충분한 나라, 높은 나라가 경제와 경영에 성공한다, 이런 이론을 내놨습니다.

이게 핵심이 되는 신뢰와 원칙, 규범과 원칙을 지킬 수 있는 그 사회의 역량을 말하는 것입니다. 연대는 타협과 양보를 통해서 공동체적인 합의를 이루어 갈 수 있는 역량을 말하는 것이지요. 개방은 FTA 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서는 정보의 투명한 공개, 그것을 개방된 사회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사회적 자본, 자주 안 듣던 얘기죠? 제 학위 값입니다”

이 사회적 자본은 민주주의에서라야 충실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번영에 가장 적합한 제도이다, 이 얘기는 자주 안 듣던 얘기지요? 이건 이게 이제 제 학위 값입니다. (일동 웃음 및 박수)

민주주의는 평화의 기술이다, 이것은 칸트의 ‘영구 평화론’의 기초가 되고 있는 이론입니다. 근데 좀 현실에 있어서 잘 실현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치이기 때문이고, 국민은 전쟁을 원하지 않으므로 따라서 민주주의는 평화의 제도이다, 요약하면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평화는 아시다시피 번영과 행복의 기본 조건입니다. 감이 잘 안 오시면 전쟁, 즉 평화의 반대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쟁... 모든 것은 파괴되고 맙니다. 인간의 행복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경제의 토대도 철저하게 파괴되는 것이 전쟁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평화가 행복과 번영의 기본조건입니다.

민주주의는 공존과 통합의 기술입니다. 민주주의는 사상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 모두 포섭하고 그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제도입니다. 다원적인 가치와 이익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집단을 이루어서 분파를 만들고 투쟁과 타협으로 분열을 극복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통합의 기술입니다. 민주주의는 상대주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상대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용의 사상입니다. 관용이 없는 사회는 사생결단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배제의 사회가 됩니다.

그래서 절대주의 또는 극단적 사상으로는 상대방을 억압하고 배제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공동체 속의 하나로 통합할 수가 없습니다. 죽거나 살거나의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민주주의만이 서로 다른 생각,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포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가장 훌륭한 통합의 기술입니다.

민주적인 절차는 상호 존중의 토대 위에서 대화와 타협, 경쟁과 승복, 그리고 재도전의 기회 보장을 통하여 이견과 이해관계를 통합하는 정치 기술입니다. 재도전의 기회, 민주주의에서만 패자에게 부여하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참 가치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야말로 상생의 정치 기술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해서 가끔 염증이라든지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은 정말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민주주의 이외에는 반대자를 이렇게 관용하는 사상이 없습니다.

권력과 지배를 정당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권력은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은 항상 사람의 인권을 침해해 왔습니다. 권력이 공공의 재산일 때 그것은 정당하고 정의이지만, 권력이 사유화됐을 때 특권이 되고, 지배 수단이 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억압의 수단이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권력은 정당한 것입니다.

이 정당한 권력은 정통성이 있을 때 정당한 것입니다. 정통성이 없는 권력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바로 민주주의는 국민 주권 제도에 의해서, 국민주권 사상에 의해서, 그리고 대의제도에 의해서 자기 지배의 원리를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권력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아울러서 권력은 항상 사유화되고 남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또한 민주주의는 거기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 놨습니다.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는 제도, 권력의 적법성을 보장하는 제도로서 법치주의, 권력의 분립과 견제, 사법권의 독립, 적법 절차, 이런 제도를 준비해 놓고 있지요. 그래서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민주주의는 정말 어디까지 왔는가,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인가, 우리나라는 그리고 선진국가는... 여기에 대한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이상은 아직 충분히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권의 지배는 해체되었는가,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있는가, 기회의 균등은 보장되고 있는가, 평화는 이루었는가, 국민적 통합은 이루어졌는가,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는 과연 실현되고 있는가? 아직도 갈등과 혼란을 계속하고 있지요. 아직 충분히 실현되지도 않았는데 이 시기에 또한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위기, 현재의 위기, 미래의 위기를 한번 생각해 보죠. 당초의 민주주의는 ‘제3계급’의 지배였습니다. 아니 ‘부르조아의 민주주의’라고 얘기를 했었죠. 즉 유산계급의 민주주의였습니다. 대중은 소외됐고 그러면서 사회주의가 등장하고 여기에서 다시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공산주의라고 하는 전체주의가 성립이 됐었죠. 아울러 이런 혼란에 대응해서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가 다시 등장했다가 몰락했습니다. 이때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습니다만, 또 사람들은 어떻게 이 고비는 넘어섰습니다.

“오늘날에도 민주주의 끊임없이 위협 받고 있다”

오늘날에도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결국 권력이 국민을 지배하는 수단은 정보와 돈, 무력입니다. 거꾸로 얘기하면 정보라는 것은 끊임없이 거짓정보를 생산해서 사람을 속이는 것이지요.

자기가 하늘의 아들이라고, 왕이 자기가 하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던 때부터 태초의 속임수가 시작됐던 것 아닙니까? 정보 조작, 이데올로기 조작이 그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속임수, 매수, 협박... 옛날에 군사정권 시절에 판사들이 독립이 돼서 말을 잘 안 들으니까 아이들 취직 하는 데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억압을 했던 시절이 있지요. 어떻게 보면 매수이고, 어떻게 보면 협박이지요.

시장은 인간사회에 불가피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 시장이 점차 비대해져서 사람을 위한 시장이 아니라 시장을 위한 사람의 삶을 만들어 낸다, 공동체에게 시장을 위한 행동을 요구한다라는 것이 또 하나의 문제이구요. 시장도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이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은 시장의 독점적 독재적 지배자가 시장을 앞세워서 공동체를 지배할 가능성이 지금 대단히 강한 것 아닙니까? 현실적으로 그렇지요? 여기에 언론권력이 등장합니다.

“언론, 독재시대엔 독재와 시장지배시대엔 시장 지배자와 결탁”

언론권력은 가장 강력한 권력수단을 보유한 집단입니다. 독재 시대에는 독재와 결탁하고, 시장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시장 또는 시장의 지배자와 결탁하고, 권력에 참여해서 버스럭지를 얻어먹던 잘못된 언론들이 많이 있었지요.

그리고 독재가 무너지고 나니까 스스로 권력으로 등장해서 누구는 대통령 된다, 누구는 안된다까지 결정하려고 했었죠? 92년에는 성공했고, 97년에 실패하고, 2002년에 또 실패했습니다만, 또 2007년에 그들은 또 성공하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성공할 거 같죠?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 다른 나라도) 그런 것이지요. 지난날의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민주주의 외부로부터, 민주주의 아닌 힘으로부터의 위협이었습니다만, 이제는 이것은 민주주의 내부에 존재하는 위협입니다. 이것은 가치의 위기를 초래합니다.

정치는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입니다만, 시장은 이익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가치의 위기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언론과 시장이 세상을 지배하게 됐을 때 그 정통성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시장의 정통성이, 시장이 공동체를 지배할 정통성이 어디서 나오느냐는 것이지요. 시장의 강자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도 좋다는 정통성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이냐? 언론의 정통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역사적으로 언론이 민주주의의 무기였습니다. 권력에 맞선 시민사회의 무기였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헌법의 정치적 자유의 핵심적인 제도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언론은 보호받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권력에 맞선 언론, 시민사회의 대변자로서의 언론일 때 그와 같은 특수한 지위를 우리가 인정한 것이지요.

그것이 수행하는 행위의 가치성 때문에 거기에 우리가 정통성을 부여했던 것인데, 어느덧 민중을 억압하는 기제로, 민중을 억압하는 편에 서서 민중을 속이는 데 앞장서 있다면 그 정통성은 어디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이 우리 민주주의의 하나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위기는 정치에 대한 불신, 냉소, 무관심, 우선 민주주의에서 결정한 대화와 타협의 결과가 나한테 불만이다, 이런 이기주의적 관점이 있을 수 있죠. 나의 사상에 맞지 않다, 이 근본주의 사상입니다.

실제로 정치에서 과거 독재 같은 때 특권과 반칙이 있었지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한 불신이 생긴 것입니다. 사적 이익의 추구, 부정부패, 거짓말과 무책임과 불신,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그런 불신이 아직도 우리 국민들 가슴에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비용이 많이 듭니다. 딱 한 번 결정하면 되는데 그걸 가지고 와글와글 시끄럽고요, 선거 한 번 하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지금도 시끄럽죠. 싫어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갈등과 혼란,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는 경제적 비용에 대해서 국민들은 짜증스럽게 생각합니다. 사실은 당연히 들어가야 될 비용이지만 어떻든 정치가 제대로 보답을 못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 불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정치는 권력투쟁입니다. 권력투쟁은 필연적으로 어두운 모습을 보이게 돼 있습니다. 권력투쟁 없는 정치는 있을 수 없지만, 권력투쟁은 언제나 우리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불신이지요. 어떻든 갈등과 대결, 경쟁은 정치의 속성상 당연한 것이지만, 불가피한 것이지만, 아직 운동경기와 같은 수준의 경쟁으로 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규칙과 절제 없는 대립과 투쟁, 언론과 여론은 불신과 혐오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 하면 강자에 대해서는 어쩐지 나쁘게 말하는 것이 좋지요. 요즘 그것 갖고 한 몫 보려는 언론들이 있습니다.

제가 언제 강자입니까? 정부에는 옛날에는 강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정부에 강자가 없습니다. 제가 별로 그렇게 강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여전히 정부라는 이유라 해서 정부를 비틀고 꼬집고 흔들면 한몫 보는 줄 아는 언론들이 있지요. 그래서 간판은 ‘할 말은 하는 언론’, 이렇게 나오지요. 제 편 좀 들어 주십시오. 이럴 때는 박수도 한 번 쳐주시고 한 번 활짝 웃어주시고요. (웃음 및 박수)

민주주의에 대한 무관심은 민주주의에 대한 외부의 적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전제왕권은 소멸했고, 파시즘은 패배하고, 공산주의는 붕괴했고, 그리고 독재 권력도 점차 붕괴돼 가고 있으니까, 국민들이 이제는 안심이다 하고 신경을 꺼버립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위기가 되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민주주의에 새로운 지배구조, 즉 시장의 지배, 언론의 지배, 새로운 지배구조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잊어버린 것이지요.

권태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무능한 정부보다 부패한 정부가 낫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 국민들은 이런 무식한 소리 안 합니다. 이런 무식한 말을 하는 정당이 있는데, 그 정당에 또 박수치는 언론이 있고요, 그걸 옮기는 언론이 있고요, 박수치는 국민도 더러 있어요. 아주 위험하지요. 그래서 민주주의의 위기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그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장래는 여전히 민주주의다... 앞으로도 모든 사상을 포섭해서 민주주의는 진보를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계속 유지되고 발전될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사상은 사상과 이론이 포용성이 있고 상대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변화도 수용할 수 있고 어떤 사상도 그 안에 수용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그 안에 변화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는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진보할 것입니다.

그동안 진보해 왔습니다. 내용적으로는 선거권의 확대, 그리고 인간다운 생활이라는 새로운 가치에 추가... 이런 것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에 완결은 없을 것입니다. 역사에는 완결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배와 억압, 전쟁이 생겨난 동기―인간의 본성이지요―인간의 탐욕과 본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영원히 투쟁하면서 발전할 것입니다. 시련과 투쟁, 진보는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이 시점에서 민주주의가 앞으로 발전해야 될 과제는 무엇인가 몇 가지 짚어 보겠습니다.

민주주의는 투표하고 대화와 타협 하고, 선거하고 대화하고 타협하고 그렇게 한다고 민주주의가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내용에 있어서 진보성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제3계급의 민주주의와 대중의 소외를 말씀드렸는데, 궁핍한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궁핍해서 남에게 구속을 받아야 되는 사람에게 평등을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실질적 민주주의라고 하는 실질적 자유, 실질적 평등,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민주주의가 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보란 무엇인가?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자, 이런 것이지요. 약자도 같이 살자, 아주 쉽게 말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함께 가는 민주주의, 그것이 진보의 사상이고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약자에게도 그들의 이익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 밥만 주는 것이 아니라 권리도 함께 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더불어 살자는 사상을 연대의 사상이라고 얘기하지요. 또한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경쟁의 장에서 권력 간의 경쟁 또는 투쟁의 장에서 기회 균등과 세력 균형을 보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개 진보적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진보 사상과 자유와 평등이라고 하는 민주주의 고유의 원리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가치입니다. 그래서 요즘 와서 진보 하는 사람에게 ‘너 좌파냐? 너 공산주의자냐?’ 하고 갑자기 묻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진보적 민주주의는 통합의 조건입니다. 통합의 실질적 조건은 갈등을 예방하고 해소할 수 있는 사회라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자면 복지와 기회의 균등이 필요하고,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대의 사상과 계층 간 집단 간의 세력 균형이 필요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균형사회로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진보를 위해서 제도를 만들 때 시장의 기능을 완전히 죽여버리자 하는 사상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시장을 폐쇄하자는 것도 있었죠. 시장을 많이 규제하자. 가급적이면 시장은 적게 규제하고 시장은 시장대로 살려가면서 시장의 규제를 덜 하는 방법으로 우리가 말한 이 연대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이런 의견들의 차이가 많이 있을 수 있겠죠.

시장과 조화되지 않는 진보의 정책은 성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극단주의 좌파의 주장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근본주의 좌파의 주장이, 근본주의 진보의 주장이 성공하지 못하는 점이 바로 이 점입니다. 그래서 진보적 사상은 시장과 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시장은 인간의 본성을 고려해서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투쟁의 단계를 우리는 넘어왔습니다. 그 민주주의가 제도화하는 단계를 우리는 지나왔습니다. 개혁, 청산, 많이 했었죠. 그런데 그래서 우리는 민주주의는 투쟁이 본질이다, 민주주의는 개혁이 본질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것은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고 어느 정도 제도화된 민주주의 위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위에서는 대화와 타협이 민주주의의 본질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상대주의 말씀드렸지요? 민주주의의 핵심은 관용입니다. 관용의 제도는 서로 인정하는 것이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부득이할 때 규칙을 적용하고 승복하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화와 타협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 과제이지요. 현재의 과제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언론 자유는 사주로부터의 자유”

언론은 우리가 개혁해야 합니다. 언론은 여론을 지배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론은 헌법상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언론은 권리의 횡포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깃발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특별한 보호를 받았던 것이고 또 앞으로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독재권력과 유착하여 독재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해 왔고, 새로운 지배구조 하에서는 시장지배 권력과 결탁하여서 시장지배 권력에 봉사하고 있고, 이제는 그 자신이 지배권력이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많은 사람들이 언론 자유를 얘기하고 있는데 언론 자유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만 말하고 있는데, 사실은 돈으로부터의 자유, 말하자면 금권으로부터의 자유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고, 오늘 언론 사주가 금권화 돼 있는 사회에서는 언론 사주로부터의 자유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언론의 자유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언론의 자유는 언론 사주로부터의 자유, 이들 데스크로부터나 좀... 데스크야 뭐 좀 직업상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사주로부터 언론 자유를 얘기해야지 난데없이 참여정부보고 자꾸 언론자유, 언론자유 해요. (일동박수)

언론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국민의 편에서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는 시민의 권력이 되어야 합니다. 약자의 권력이 되어야 합니다. 참여정부도 약자니까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일동박수)

좀 싱거운 소리 했습니다마는 한국의 경우 최소한의 기본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소비자 권력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시장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시장은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행복, 인간의 자유와 평등, 그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한계가 있고 시장도 실패합니다. 시장의 실패로 인해 낙오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것도 국민의 권익을 지켜낼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한 것이지요. 시장 지배자의 부당한 지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언론의 권력화, 누가 제어할 것이냐..... 저희가 정경유착, 권언유착, 언론의 지배에 맞설 수 있는 사회적 힘과 제도는 무엇인가,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결국 국민 개개인의 목소리, 그리고 국민들이 단결해서 대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권력이 문제가 될 때 소비자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조직하고 단결해서 시장의 지배권력에, 즉 시장지배 권력의 횡포에 맞서야 하는 것입니다.

언론도 마찬가지로 소비자가 결단해야 합니다. 내가 ‘트렌드 2010’이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경영에 관한 이론이었습니다. 그 책을 보니까 ‘깨어있는 소비자가 기업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견제할 수 있다’는 그런 내용이 나와 있었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안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지요. 정보네트워크로, 조직하기 어려운 것은 정보네트워크로 더 보완하고 오늘의 인터넷이 그런 기능을 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소비자 권력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불량품 추방은 가능하지만 독점과 불공정 거래라고 하는 시장의 구조를 제어하는 데에는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이제 소비자 운동은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깨어있는 소비자’, 더 거쳐서 ‘깨어있는 시민’으로 가야 합니다. 시민은 전통적으로 권력의 주체입니다. 분산되어 있을 뿐이지요. 정치의 소비자, 이 말은 그러나 분명한 주권자입니다. 주권자로서 시장을 제어하고 또 정치를 제어해야 하는 것이지요.

옛날에는 시민 하면 재산과 교양을 가진 제3계급을 의미했고, 그 사람들의 특성은 자유와 인권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시민, 그리고 권력을 지향하는 적극적인 투쟁, 깨어있는 시민을 말했습니다.

현대의 시민은 선거권의 확대로써 모든 국민을 포괄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권리를 위해서 투쟁하지 않는 사람도 포함돼 버린 것이지요. 전 국민이 초기 민주주의시대의 시민과 같은 시민 자세로 무장이 됐을 때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행동하는 시민에 의한 민주주의, 이것이야말로 국민주권의 내실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의 과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고 어느 나라나 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지요.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도 비슷한 것인지 한번 보시지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청산과 개혁은 상당 수준에 간 것 같습니다. 지금 특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권력기관이 아니고 오로지 언론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시장지배 권력은 아직 잘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지요. 부패정치도 일소됐다고 생각합니다만 부활할 가능성이 보입니다. 공천헌금, 후보 검증에 대한 언론의 무관심, 여론의 무관심, ‘부패가 낮다’ 하는 이런 망발, 그리고 이와 같은 부패를 봉쇄하기 위한 제도 개혁이 가능한데, 제도 개혁에 대해서 언론도 국민도 무관심하지요. 정치자금 제도, 공천 제도를 고쳐서, 고칠 만한 대목들이 있는데 무관심하고 있습니다.

대개 이런 문제는 있지만 어떻든 청산과 개혁은 상당히 이루어진 것으로 봅니다만 그러나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고요,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이렇게 갈등과 혼란을 계속하고 국회에서 법안이 정체되고 이렇게 되었을 때 소위 속도의 시대, ‘경쟁의 속도가 국가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도 지금 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학법 가지고 뭐 가지고 어쨌든 국회를 지금 잡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 분열주의를 극복하고 통합주의의 정치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한국에서 모든 좌절의 역사는 다 분열로부터 비롯되고 있습니다. 역사를 읽어보면 너무나 선명합니다. 지난날의 우리 역사가 수용 불가능한, 관용 불가능한 사상과 세력 간의 투쟁이었습니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관용이라고 하지만 친일과 관용할 수가 없지 않았겠습니까? 친일세력으로부터 반민특위 해체됐지요, 동존상존의 전쟁을 거쳤고요, 독재, 반독재, 어쨌든 상용하기 어려운 기나긴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비타협 투쟁의 풍조가 남아있습니다. 아직도 극단주의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넘어서야 하는 것이지요. 이 대결주의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고요.

지역주의, 이거는 혁명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겠는데 이름 붙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완성의 혁명입니다. 절반의 좌절이, 절반의 승리이지요. 절반의 좌절 아닙니까? 분열 때문이지요. 정권교체를 못 했지요. 지역대결은 타협이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이익은 서로 교환할 수 있지만 지역을 어떻게 교환할 수 있습니까? 지역대결 정치가 경쟁이 없는 정치를 만들어내지요. 그러면 당연히 정치의 품질이 저하되고 공천이 이권화돼서 공천비리가 생기고 부정부패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지역주의,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노무현 때문에 열린우리당 망했으니까 나가겠다는 것인데...”

어떻든 지난번 참여정부의 출범은 지역주의에 대항하는 정치세력의 정말 놀라운 승리였습니다. 영남사람 노무현과 그 일당에게 호남에서 몰표를 주셔 가지고 저는 지역통합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우선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다 지켜내지 못해서 무척 마음이 아픕니다.

16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영남지역에서 13% 득표를 했습니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영남에서 32%를 득표했습니다. 만약에 대통령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영남에서 32%를 득표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무조건 이기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좌절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분해되고 있는 것이지요. 차별화한다는 겁니다. 노무현 때문에 열린우리당 망했으니까 우리 나가겠다 이거지요. 보따리 싸 가지고. ‘무슨 정책이냐?’ 물으면 대답이 없습니다. ‘당신, 인기 낮지 않냐?’ 이거거든요. 당신들 인기는 나보다 더 낮지 않소?....

회사가 부도가 나려고 할 때는요, 회사가 부도가 나려고 할 때 그 회사가 되려면 이사들이 나가서 자기 집이라도 잡히고 해야 그 회사가 사는 거 아닙니까? 죽을 때는 다 같이 죽더라도. 회사가 아직 부도도 나가도 전에 여유자금이 좀 바닥이 났다고 보따리 싸 가지고 우수수 나가 버렸습니다.

이거 정치윤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정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국회에 왕창 들어와 가지고요.... 제대로 훈련받지 못했지요. 어떤 정치로 훈련 받았냐면요, 2001년에 차별화한 사람들의 지지도가 쑥쑥 올라갔지요. 그거 배신적인 행위 아닙니까? 2002년에 제가 그때 후보였는데 후보가 좀 흔들리니까 바깥에 있는 누구하고 내통을 해요. 그랬지 않습니까? 그랬지요? 바깥에 있는 후보하고 내통해 가지고 후보 바꾸려고… 그랬어요.

그 후보가 만일에 와서, 왔으면 이겼을까, 만약에 그 후보가 이겨서 대통령이 됐더라면 대한민국의 오늘날 정책이 어디로 갈 거 같습니까? 지금처럼 갈 거 같습니까? 괴로울 거 같지는 않을 거 같아요? 민주주의 할 거 같아요? 그래도 얼마간의 진보정책을 할 거 같습니까? 남북대화 할 거 같습니까? UN 사무총장 나왔겠어요?

그때 그 내통했던 사람들이 지금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참여정부 실패 얘기하고 있어요. 나는 참여정부 실패 얘기하는 사람들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중상모략을 하는 사람이라고 단정합니다. 만일에 알고도 무슨 얘기를 한다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지요.

“‘실패한 정부 책임자는 오지 마라’ 품질이 딱 맞는데 왜 오지 마라 하는가”

한번 나와 얘기해 보자고요. 그 사람들이 믿는 게 있지요. 지역주의 하나만 부추기면 언제든지 안방에서 당선된다 이거지요. 안방정치 하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놓고 무슨 ‘실패한 정부의 책임자는 오지 마라’ 이러는데, 그 책임자는 차별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오지 마라에요. 딱 품질이, 품질이 서로 맞지 않습니까? 정치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 지역주의를 우리가 극복하지 못하면요, 계속해서 호남은 고립됩니다. 호남 정치인들 다 보태도 이인제 씨가 나오지 못하면 못 이기거든요. 97년에 이기니까 호남 충청 손잡아 이겼다는 이런 공식을 가지고 있는데, 숫자가 알아요. 간단한 전자계산기로 두드려 보면 이인제 씨가 동쪽에서 5백만 표를 깨주지 않았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기지 못하는 거 아닙니까? …이인제 씨가 또(?) 있습니까, 지금? 요행을 바래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지역주의를 깨고 정책대결로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 정책대결은 선명하지 않습니까? (일동 박수)

그래서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를 해야지 지역으로 대결하는 정치를 절대 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극복해야 됩니다. 자기의 선거에서 경쟁을 해 당선되겠다고 하는 OO정책에 그야말로 호남의 국민 여러분들이 절대로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제가 좀 흥분했습니까? (일동웃음, 박수)

한국 정치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복지지출은 미국․일본의 절반, 유럽의 3분의 1, 즉 복지 후진국입니다. 우리나라는 정치 후진국, 언론 후진국, 복지 후진국, 세 가지 측면에서의 후진국, 이것만 벗어나면 우리나라 바로 선진국 갑니다.

복지 후진국..... 작은 정부가 아니라 책임을 다하는 정부, 책임을 다하자면 절대로 세금 깎으면 안 됩니다. 감세론 얘기하는 사람들요, 그러면서 무슨 보육예산 더 주고 또 어디 뭐 하고 무슨 복지 한다고 하는데, 뭐요, 도깨비 방망이로 돈을 만듭니까? 흥부 박씨가 어디서 날아 온답디까? 세금, 이명박 씨가 내놓은 감세론이요, 6조 8천억 원의 세수 결손을 가져오게 돼 있거든요. 6조 8천억 원이면 우리가 교육혁신을 할 수 있고요, 복지 수준을 한참 끌어올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이 감세론, 절대로 속지 마십시오. (일동 박수)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가치를 추구하는 대의의 정치를 해야 합니다. 원칙과 일관성을 가지고 가야 하고요, 기회주의를 청산해야 돼요. 정치인들이 보따리 싸들고 어디 유리한 데 찾아다니는 이런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아니, 서울서 영남으로 떨어지러 내려가는 사람도 있는데 자기 지역 줄도 그냥 지켜야 될 거 아닙니까? 자기 당이라도 지켜야 될 거 아닙니까? 왜 보따리 싸들고 오락가락 그래요. 그러니까 정치가 신뢰가 떨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 언론도 국민도 불신과 냉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좀 책임 있는 대응을 해 줘야 합니다. 예, 정치언론 얘기 이제 그만 하고요.

“여소야대에 전 언론이 흔들어대는데 대통령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우리 정치가 책임정치로 가야 하는데요, 정치하는 사람도 책임을 져야지만, 책임진 사람도 책임을 져야 하지만 정당 하는 사람들, 정당의 지도부, 그 국가의 지도자에 대해서 지도력을 좀 세워 주세요. 지금처럼 이렇게 흔들면요, 살아남을 정권 없습니다. 살아남을 정당 지도부도 없습니다.

하나도 도와주지도 않고 지도부 혼자서, 어디 국민들한테 나가도 지도부 하나만 딸랑 내보내고 따라가는 국회의원도 없고요, 그런 정당이 어떻게 지도력이 설 수 있겠습니까? 여소야대에다가 전 언론이 이렇게 흔들어 대는데 대통령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흔들어놓고 국회에서 해줄 건 안 해 주고 나중에 와서 그렇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하는 것이 견제가 아니고, 할 때 맡겨주고 할 수 있게 맡겨주고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야 될 거 아닙니까? 제, 노무현 정책이 잘못된 거 있으면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라 이거지요.

균형발전정책이 잘못됐으면 균형발전정책 책임 묻고, 혁신정책이 잘못 됐으면 그것 묻고, 10대 성장동력이니 뭐니 이런 것 잘못됐으면 거기에 책임을 물어라 이겁니다. 그래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하지도 못하게 해놓고 책임지라고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정치윤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로. 대안을 가지고, 대안을 가지고 반대해야 하고요, 규칙으로 승부하고 결과에 승복하고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 다시 승부를 해야지, 다음 선거 가기도 전에 출발하는 놈 잡고...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총리 인준해 주는 데 6개월 걸렸습니다. 7개월 걸렸지요? 7개월 동안 총리도 인준 안 해 줬어요.

한 시간이 지나서 이제 넘어가야겠네요. (일동 웃음)

후진적 제도와 문화를 개혁해야 합니다.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렸던 것은 책임 있는 정치입니다. 책임 있는 사회, 책임 있는 정치, 거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언론도 시민도 이제 책임 있게 행동하자....

‘한국식 민주주의’, 말하자면 후진적 제도 몇 개를 개혁해야 됩니다. 박정희 정권 초기에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었지요, 나왔지요. 유신시대에는 이 말이 우리 헌법에 들어갔습니다. 헌법 책에 나왔습니다. 오늘날에도 독재 시대에 대한 반동에서 유래한 후진적인 제도와 문화가 많이 있습니다.

“5년 단임제 나라는 민주주의 선진국 아니다. 쪽팔린다”

대통령 단임제, 독재가 겁이 나서 단임으로 한 거 아닙니까? 이건 그 당시 각 정당의 득표 전략하고도 상관이 있는 것인데요, 전 세계에서 막 후진국을 벗어난, 독재국가를 벗어난 국가에서만 5년 단임제를 갖고 있지 선진 국가에서는 5년 단임제 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5년 단임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민주주의 선진국 아니다라는 증명이고요, ‘쪽팔린다’는 이런 뜻입니다. 오늘 신문 제목에 ‘쪽팔린다’만 또 나올 것입니다. (일동 웃음 및 박수)

당정 분리, 저도 받아들였고 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만, 그동안 그랬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당정 분리를 채택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당정 분리도 재검토해 봐야 합니다. 책임 안 지는 거 보셨죠? 대통령 따로 당 따로, 대통령이 책임집니까, 당이 책임집니까? 당이 대통령 흔들어 놓고 대통령 박살내 놓고 당이 심판받으러 가는데… 같은 겁니까, 다른 겁니까? 어떻게 심판해야 하지요? 책임 없는 정치가 돼 버리는 것이지요.

정치의 중심은 정당입니다. 개인이 아니고요, 대통령 개인이 아니고요. 대통령의 정권은 당으로부터 탄생한 것입니다. 당정 분리라는 것도 재검토 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지난번까지는 부득이했지만 이제는 넘어설 때가 된 거 아니냐... 왜냐하면 당을 지배하는 제왕적 권리는, 이제 권력의 부작용은 많이 해소됐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의 정치 중립론, 어떻게 대통령이 정치 중립을 합니까? 대통령은 가치를 가지고 전략을 가지고 정당과 함께 치열한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잡고 그 다음 정권을 지키는 데까지, 비록 내가 안 나오더라도 의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 아닙니까? 참여정부 이후의 정부가 여전히 민주정부가 되도록 지켜야 될 의무가 있는 사람 아닙니까? 그 사람에게 정치 중립 하라,

또 공무원법에서는 정치 활동은 괜찮다, 이래 놨거든요. 대통령의 정치활동은 열외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공무원법에는 그래 놓고 선거는 중립하라.... 정치에는 중립 안 해도 되고 선거에는 중립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차라리 선거운동은 하지 마라, 그야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요. 어디까지가 선거운동이고 어디까지가 선거 중립이고 어디까지가 정치 중립입니까? 모호한 구성 요건은 위헌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제가 이명박 씨 감세론, 누구누구 감세론 그리 되면 우리나라 복지 정책은 완전히 골병듭니다라고 말했는데, 이것도 선거 운동입니까? 제가 선거 중립을 안 지킨 겁니까? 만일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정권 절대로 잡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선거 운동이고, ‘이런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잘 되겠지요?’ 이러면 선거 운동이 아닌가요? (일동 웃

음 및 박수)

그냥 ‘이 정책은 옳지 않습니다’, 말을 못해요? 증세냐 감세냐, 아니면 복지냐 감세냐 이걸 놓고 지난 2년 동안 치열하게 공방을 벌여 왔는데 거기에 대해서 ‘대통령은 지금부터 입 닫아라’,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사실에 맞지 않는 이런 것도 앞으로는 바꾸어 고쳐 나가야 합니다. 공격하는 사람, 그 사람의 도덕적 신뢰성, 논리적 신뢰성, 정책적 역량의 신뢰성을 공격해 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대운하, 민자로 한다는데 그거 진짜 누가 민자로 들어오겠어요? 그런 의견을 말하는 것은 정치적 평가 아닙니까? 참여정부 안 그래도 실패했다 해쌌는데, 내가 이 얘기 아닙니까? ‘여보시오, 그러지 마시오. 당신보다 내가 나아. 나만큼만 하시오.’ 그 얘기입니다. (일동 웃음 및 박수)

세계에 유례가 없는 위선적인 제도이거든요. 이건 어떻게든 앞으로 저희도 노력해 보겠습니다만, 정부가 무슨 선거법을 함부로 어떻게 할 수는 없고요, 참 난감해요. 어떻든 여러 가지 방도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국회가 정부를 견제해야 된다, 여소야대가 좋다, 이건요, 정당 정치가 있기 이전에, 미국 혁명 당시에 생긴 아주 원론적인 권력분립론이죠. 지금은 정당에 의해서 의회와 정부는 통합되고, 그렇지요? 정당에 의해서 의회와 정부는 하나로 통합되고, 정당과 정당 간의 견제를 통해서 견제가 유지되고, 그 견제의 가장 좋은 방법은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다음 선거에서 보자... 다음 선거가 있다는 사실이 권력으로 하여금 대단히 조심스럽게 행동하도록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여기에 잘못된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소야대가 좋다’라고 설문에 답하는 분들이 있는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합당과 연정 구별도 못하는 사람들이 저를 공격해대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다음에 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연대.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 정당과 정당 사이에는 연합하고 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연정 제가 얘기를 한번 꺼냈더니, 그 시기에 연정 얘기를 꺼낸 것이 그렇게 적절하지는 않았다는 비판은 제가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정이라는 의미 자체를 가지고 온 나라가 난리나 버렸어요.

전 세계에 선진 민주주의 하는 나라가 연정을 하고 있습니다. 소연정, 대연정, 협력적 민주주의를 하고 있고, 그 나라의 정치들이 선진정치이고 효율이 높고 국민의 권리가 훨씬 더 신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인정해야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한쪽에서는요, 연정하자고 했다고, ‘당신, 독재자의 딸하고 연정할 수 있느냐?’, 이런 얘기를 하는데, 합당하는 것과 연정하는 것은 아주 다른 것이지요. 합당과 연정의 구별도 못하는 사람들이 저를 공격을 해대니 제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한국의 민주주의…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 한국이 해야 되는 것은 그렇습니다. 문제 해결은 참여 민주주의로 가자.... 그동안 우리 한국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4.19, 10.16, 5.18, 6월 항쟁, 할 만큼 했습니다. 잘했습니다. 민주주의, 이제 청산과 개혁도 상당히 많이 했습니다.

이제 민주주의 안에서 민주주의를 내실화하는 운동으로 국민이 나가야 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참여입니다. 선거에 참여에서 지도자를 선택하고 시민운동을 통해서 민생 정책, 정치의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정치에 참여, 정당 운동과 정당 운동 그밖의 여러 가지를 통해서 정치를 스스로 판단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자금, 10분의 1 안 되는 것 맞다. 자꾸 다른 돈 넣어 가지고 이러는데...”

돈 정치를 추방할 수 있었던 것은 노사모 덕분입니다. 노사모가 있어서 제가 돈을… 노사모가 돈도 많이 모아 주었지만 돈 없이 선거를 치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가 돈을 적게 썼고, 그러니까 ‘좋다, 수사 한번 해 보자’, 웃통 딱 벗고 나갈 수 있었지 않습니다, 그렇죠?

10 분의 1 안 되는 거 맞습니다. 자꾸 다른 돈을 넣어 가지고 자꾸 10 분의 1 이러는데, 선거 때 썼던 거 생각하면 10 분의 1 안 됩니다. 안 되는데, 어떻든 그렇게 해서 수사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가 만들어준 것입니다. 노사모가 없었으면 대통령이 못 됐거나 수사를 못 됐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겁니다. 민주주의 개혁 정권을 수립하고, 진보적 정권을 수립하고, 그리고 지금 제가 보수 언론과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언론 개혁, 한국의 민주주의의 진보를 위해서, 선진 민주주의를 위해서 딱 남은 몇 가지 소위 진보적 민주주의 해야 하는 것이고, 정치 선진화해야 하는 것이고, 그리고 언론 선진화해야 된다는 이것을 알기는 알지요.

정치하는 사람이 언론의 밥인데, 대통령도 밥인데, 어떻게 감히 이 일을 할 수 있느냐? 충분하지는 않지만 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지지하고 또 참여해 주는 사람들의 조직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두고 보십시오. 다음 정권 넘어가면 기자실이 되살아 날 것 같아서 제가 확실하게 대못, 대못으로 대못질을 해 버리고 넘겨주려고 합니다. (일동박수)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딱 말씀을 드려놓고 보니까 박사감이네요. 뭐. (일동웃음, 박수)


-뉴스비젼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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