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역사박물관,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 소장 ‘마펫 한국 컬렉션’ 서울사진으로 『학술총서 18』발간
학술총서 18 '100년 전 선교사의 서울살이' 표지
[오픈뉴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용석)은 학술총서18 '100년 전 선교사의 서울살이'를 발간했다(사진1).

서울역사박물관은 2010년도부터 해외에 산재한 서울학 관련 미공개 자료를 발굴․수집․조사하고 이를 학술총서로 발간하고 있다. 학술총서 발간 사업은 해외에서 잊혀지거나 접근이 어려워 잘 알려지지 않은 서울학 자료를 연구, 공개함으로써 시민에게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이번 학술총서는 2020년부터 진행된 미국 소재 서울학 자료 조사의 2차 사업의 결과로, 계속되는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 소장된 ‘마펫 한국 컬렉션’ 사진 4,460건을 조사하고 그 중 163건을 엄선하여 선보인다.

‘마펫 한국 컬렉션(Moffett Korea Collection)’은 미국 북장로회의 초기 한국 선교 시기, 서울에 왔던 사무엘 A. 마펫(Samuel Austin Moffett, 1864-1939, 1890-1934 한국 선교) 선교사와 그의 가족, 동료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수집, 작성한 자료들이다. 그의 아들 사무엘 H. 마펫(Samuel Hugh Moffett, 1916-2015) 부부가 1997년부터 프린스턴 신학교에 기증하여 2005년 컬렉션이 완성됐다. 문서류․사진류․서적류로 구성되어 있다.

마펫 한국 컬렉션 사진자료는 교회사 연구자들에 의해 일부 소개된 바 있었지만, 1890년대 서울 풍경과 일상을 담은 사진, 선교사들의 생활상을 이와 같이 다채롭게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미국 연합감리교회 아카이브(GCAH)를 조사․공개했던 『학술총서 17』에 이은 두 번째 선교사 시리즈로, 이번에는 개항 이후 서울에서 가장 오래 거주했던 외국인 집단의 관점으로 선교사들의 생활상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았다.

주제는 ‘서울 풍경’, ‘학교․교회․선교사 사택’, ‘병원․의학교’, ‘서울 생활’의 총 4개로 나뉜다. 선교사들이 서울을 선교의 중심지로 정하고 정착한 후, 선교활동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의 흐름으로 스토리를 구성했다.

제1장 ‘서울 풍경’은 정동, 광화문, 종로, 소공동, 한양도성 등 근대 전환기 서울 풍경과 일상생활 모습을 담고 있다. 1890년대 사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1885년경부터 입국한 초기의 선교사들은 조선왕조의 수도 한양의 전통적인 공간부터 대한제국의 수립, 도시 개조사업으로 막 변해가기 시작하는 서울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했다.

선교사들이 선교 초기, 정동에 정착했던 만큼 정동 지역 사진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정동 일대의 전경 사진(사진2)은 외국 공사관과 선교사들이 자리 잡은 선교기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으며, 정동 러시아공사관 전망탑에서 바라본 1892년 서울 시가지 전경 사진(사진3)은 정동에서 광화문, 그리고 현재 세종로와 종로대로를 따라 저 멀리 동대문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른 시기 서울의 모습을 넓게 조망한 사진으로 보기 드문 희귀한 자료이다.

원수부(元帥府)가 보이는 경운궁(덕수궁) 풍경(사진4), 경운궁 남쪽 인화문 방향의 담장 공사 사진(사진5) 등은 아관파천(1896) 후 고종이 경운궁으로 복귀하여 새롭게 궁궐을 정비하고 개혁을 도모하려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현재 소공동 일대에 해당하는 1894년경 남별궁 일대 시가 전경(사진6)과 조선호텔에서 바라본 황궁우 사진(사진7)은 대한제국의 상징으로 1897년에 건립되는 원구단이, 일제강점기 조선호텔의 신축으로 다시 헐리게 되는 역사적 변화 과정을 잘 담고 있다.

1896년 내부령(內府令)에 따라 철거되는 ‘가가(假家, 임시 가건물)’가 늘어서 있는 종로 거리 풍경(사진8), 성벽이 철거되기 전 흥인지문의 전경(사진9), 궁장이 훼철되기 전의 경복궁 동십자각(사진10), 철거되기 전 월대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광화문(사진11) 등을 통해서는 도시 개조사업 등으로 모습을 바꿔나가기 전의 서울의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서울과 비교하여 과거의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어 흥미롭다.

이밖에 궁궐 앞에서 대기 중인 가마들(사진12), 보도각 백불(홍은동 옥천암 마애보살좌상)로 가는 인력거 행렬(사진13), 용산 한강 부근에서 운행 중인 인차(人車) 철도(사진14), 청국 상인 사진(사진15) 등은 이색적인 서울 풍경을 자아낸다.

제2장 ‘학교․교회․선교사 사택’과 제3장 ‘병원․의학교’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의 초기 선교활동을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이들은 서울을 선교의 거점으로 삼고, 의료․교육사업을 전도의 기반으로 했다. 이 사진들은 선교활동뿐 아니라 거주공간, 한국인과의 관계성까지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1885년 알렌(Horace N. Allen, 1858-1932)이 고종의 명에 의해 설립한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사진16)과 이것이 재편, 발전된 세브란스병원, 정신여자중고등학교․경신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정동여학당(사진17)․언더우드학당(사진18), 그리고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1859-1916) 집 사랑채에서 시작된 정동교회(현재 새문안교회의 전신), 연동교회 사진 등은 서울의 근대 역사와도 궤를 같이 하는 의료․학교․교회사업들을 대표적으로 잘 보여준다. 병원과 학교를 통해 선교의 기반을 구축한 북장로회는 1887년 비로소 한국인의 신앙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선교활동 가운데는 선교사들과 한국인 간의 유대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진도 있다. ‘가족’ 사진(사진19)은 선교사업과 가정생활을 도와준 한국인들을 찍은 사진으로, 사택과 선교 건물을 지켜주는 기수(旗手)의 부인, 부녀자 대상 신앙 전도를 도와주는 전도부인, 집안 살림을 도와주는 ‘할머니(Holmonie)’, 유모 등을 ‘가족’으로 불렀던 모습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이밖에 선교사들이 초기에 살았던 정동의 사택(사진20)을 비롯하여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펼친 연지동(‘연못골’) 선교기지(사진21), 남대문로5가(‘복숭아골’)의 세브란스병원 선교구내, 사직동, 인현동(‘인성붓재’) 등지의 선교사 사택 사진들은 그간 공사관 등의 기관 건축물을 중심으로 외국인 공간을 살펴보았던 시각을 탈피하여, 서울 곳곳의 거주지와 생활 공간을 구체적으로 잘 보여준다.

제4장 ‘서울생활’은 근대시기 서울에 거주한 외국인으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집단인 선교사들의 사적인 생활 모습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선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생활인’으로서 업무시간 외에는 어떻게 쉬며 지냈는지, 낯선 타지에서 어떻게 공동체 생활을 꾸리며 서울살이에 적응하고자 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진들이다.

19세기 미국에서 부흥한 ‘대학생 해외선교 운동’의 영향으로 입국한 젊은 선교사들은 타지에서 30년, 40년을 거주하며 다양한 방식을 통해 한국에 적응하며 고된 선교사역을 이겨냈다. 선교사 간의 결혼과 교파․직업․사역․세대를 초월한 공동체 모임(사진22)을 통해 가족애와 같은 돈독한 관계를 다져나가며 안정된 일상생활을 유지하고자 했다.

선교 틈틈이 야구, 테니스 등의 스포츠를 즐겼으며(사진23) 소풍 등의 여가생활(사진24)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다. 서양의 문화를 들여와 이국적인 의식주 생활을 영위하면서 타지생활에 적응하고자 했으며(사진25), 게일(James S. Gale, 1863-1937)은 60세 생일 파티를 한국식 회갑연으로 베푸는 등 한국 문화를 깊이 향유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사진26).

또한 한국의 기후에 적응하고 자녀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한 달 정도의 여름 휴가는 필수적이었다(사진27, 28). 당시 이들에게 인기 있던 휴양지로는 남한산성․북한산성과 한강변이었다. 특히 한강변은 도심과 가까워 언제든지 다시 선교지로 복귀하기 쉬웠는데, 1894년경 한강변에 지어진 세 채의 선교사 별장(사진29)은 현재 한남동과 보광동 경계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별장은 선교사들 간 서로 나눠 쓰고 빌려 쓰는 공동체의 공간으로 기능했다.

이번 학술총서는 이러한 생활상 외에도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선교사들과 선교사 2세들의 사진도 부각하여 소개하고 있다. 남녀의 지위와 역할 구분이 뚜렷했던 가부장적인 조선 사회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선교활동은 기독교 전교의 매우 중요한 목표였으며 사회문화적으로도 여성의 계몽과 사회 진출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제중원 간호사 안나 제이콥슨(Anna P. Jacobson, 1868-1897)부터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양성소(사진30)의 주축이 되는 에스더 쉴즈(Esther L. Shields, 1868-1940) 등의 의료․간호선교사(사진31), 정동여학당과 정신여학교의 메리 헤이든(Mary E. Hayden, 1857-1900), 수잔 도티(Susan A. Doty, 1861-1903), 캐서린 웜볼드(Katherine C. Wambold, 1866-1948) 등 교육 선교사들이 대표적이다(사진32). 이들은 의학․간호학, 교육사업을 통해 근대기 신여성을 배출하는 토대를 마련했으며 그 안에서 신마리아(1873-1921), 김마리아(1891-1944), 김필례(1891-1983)와 같은 한국 여성들과 밀접한 교류를 통해 이들이 주체적인 존재로 사회에 나아가는 데 지평을 열어주었다.

한편 선교를 위해 장기간 서울에 거주하며 가정을 이룬 선교사의 자녀들이 대를 이어 한국에 뿌리를 내리며 살았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대부분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 유모의 돌봄 아래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히며 성장한 이들은 청소년기 본국에서 유학을 거친 후 대부분 다시 내한하여, 대를 이어 선교활동을 이어가거나 학교․병원․사회구호 활동 등을 하며 한국 현대사와 긴 시간을 함께했다(사진33, 34).

마지막으로 한국 근대사의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사료로서의 중요한 사진들이 있어 주목된다. 1911년 ‘데라우치(寺內正毅) 총독 암살 미수사건’, 이른바 ‘105인사건’을 날조하여 기독교계 반일 세력을 제거하고자 했던 역사적 사건이 기록된 ‘1912년 공판’ 관련 일련의 사진들은 일제강점기 일본 식민당국의 탄압과 선교사들의 사회적 활동상을 구체적으로 증명한다.

1912년 6월 28일부터 9월 28일까지 3개월 동안 지속된 1심 공판 과정에서 용수를 쓰고 결박된 채 끌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든지(사진35), 배후세력으로 지목되어 지속적으로 감시를 당했던 선교사들이 종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참관하기 위해 모인 장면, 뉴욕 헤럴드 특파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사진36) 등은 어떠한 문헌 기록보다 실체적이다.

사진에 대한 개별 해설 외에도 ‘프린스턴 신학교 소장 마펫 한국 컬렉션 사진 자료의 소개와 의의’, ‘미국 북장로회 초기 선교사들의 일과 서울생활’에 대한 논고 2편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 이해를 돕는다. 해외 학술총서인 만큼 모든 내용이 영문으로 번역되어 있어 외국인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선교사들에게 서울은 자신들의 믿음을 전하는 현장이면서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당시 그들이 바라보았던 서울 풍경과 함께 서울에서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도시 서울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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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외국인 선교사들은 서울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100년 전 선교사의 서울살이'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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