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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이 대통령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연설문

  • 오픈뉴스 기자
  • 입력 2012.09.1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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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리아 루트의 새 지평:개발협력, 평화, 그리고 환경’

존경하는 파니 듀커트 학장, 울프 스베르드룹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내외 귀빈과 미래 세계를 열어갈 청년 학생 여러분,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오슬로대학은 교육의 목적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는 정신을 가지고, 배움 그 자체에 가장 큰 가치를 둔 대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친 경쟁이나 업적을 내세우지 않고 참다운 대학 정신이 사라져가고 있는 오늘날, 이런 오슬로대학이 유럽은 물론 세계 최고의 학문적 명성을 자랑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슬로대학은 지난 200년의 역사에서 위대한 과학자이자 탐험가인 난센을 비롯하여 노르웨이의 건국자들, 수상들,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 5명을 배출하였습니다.

그 빛나는 역사에 존경을 표하고, 한국학 강좌를 개설하여 양국 간 이해를 돕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오늘 오슬로대학에서 여러분과 이야기 나누는 이 시간을 가장 귀한 시간 중 하나이자 이번 방문의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한국과 노르웨이는 아시아 극동과 유럽 극서에 있는 먼 나라이고, 나 역시 노르웨이를 공식 방문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지만 마음속에는 노르웨이가 매우 친숙한 나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선율의 솔베이지의 노래나도 잘 부릅니다.

나는 물론 많은 한국인들이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극작가 입센은 한국 교과서에 소개되고 있고, 이곳 아울라(Aula) 강당에 그림을 남긴 뭉크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기 전에 뭉크 그림을 보러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잘 보고 왔습니다.

또한 오늘 이 자리를 빌려, ‘21세기 한국이 인류와 함께 걷고자 하는 길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나의 방문이 양국 정부와 국민 간에 진정한 협력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친애하는 노르웨이 국민 여러분,

나는 오늘 이 자리를 빌려, 대한민국에 보여준 노르웨이 국민들의 우정과 헌신에 깊이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노르웨이는 기꺼이 연인원 600여명의 이동 외과병원단을 파견해

한국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수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한국 역사를 간략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910년 대한민국은 나라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와 싸워 1945년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하지만 전후 냉전질서 하에서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얼마 뒤 북한 공산주의로 부터 침략을 받아서

온 국토가 포연에 휩싸였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자유세계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나는 2010년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전 세계 참전용사들 한 분 한 분 살아계신 분들에게 감사 서한을 보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한국전 참전용사회 회장 닐스 에젤리엔 예비역 소령님이 전우들과 함께 와 계십니다. 어디계십니까?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은 이런 고귀한 헌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의 피와 땀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국은 전쟁 후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일어났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잿더미가 된 수도 서울 거리를 보며 UN군 사령관 맥아더 씨는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대한민국은 그 당시에 일인당 국민소득이 40달러도 되지 않는 세계 최빈국이었습니다.

게다가 비극적 전쟁으로 국민들은 삶의 한계선상에 놓여있었습니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어 먹는 것, 입는 것 모두를 국제사회의 무상원조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자원도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경험도 없었습니다.

가진 것은 오직 하나 가난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력뿐이었습니다.

국내에는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해외에 나가서 탄광에서 일하고, 중동의 열사의 나라에 땀 흘려 일했습니다.

그런 한편 앞선 나라의 기술을 도입하고, 투자를 하도록 권유를 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한국의 1인당 GDP24,000 달러를 넘어섰고, 무역규모 1조 달러로 세계 7,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했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속에서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가신용도는 유일하게 높아졌습니다.

또한 가난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도 수많은 어려움을 거치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고, 그것이 세계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긍지입니다.

1960년대 어느 외국 언론은, 유럽언론계입니다. 유명한 언론계인데 말은 안하겠습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혹평을 한 바가 있습니다. 그당시 상황은 그렇게 보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전후 독립 국가 중 매우 드물게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취해 냈습니다.

지난 2010년 서울 G20정상회의와 금년 3월에 세계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며,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와 함께 인류 공동의 문제를 논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외국 정상들이 가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대한민국이 경제를 성장시키고 민주주의를 일굴 수 있었던 핵심적인 원동력이 무엇이냐? 이렇게 질문을 받곤 합니다.

나는 그때마다 아무런 주저 없이 그것은 교육의 힘이라고 대답합니다.

여러분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교환학생으로 온 한국학생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왜냐면 그 당시는 밥 대신 물로 허기를 채워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한국 부모들은 모든 것을 희생하며 자녀들에게 고등교육을 시켰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힘입니다.

그렇게 길러진 높은 수준의 인적 자원이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일군 주역이 되었습니다.

교육이야말로 현실을 바꾸는 위대한 힘이라고 저는 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더불어 나의 일생도 그런 가난 속에서 교육을 받고 삶을 변화시킨 사례 중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가난한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가장 가난했던 사람 중 하나입니다. 저는 겨우 중학교를 마친 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없어서 길거리에 나가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중학교 선생님이 내 손을 잡고 강력하게 야간고등학교라도 가라고 권유했습니다.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학교를 다니라고 했던 그 선생님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는 큰 도시로 뛰쳐나갔습니다.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노동자가 되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겠지요.

하지만 선생님 말씀대로 낮에는 돈을 벌면서 밤에는 책을 봤습니다. 다행스럽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 4년 다니는 것은 지옥 같았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청소해 주고, 거기서 돈을 벌고, 장학금 조금씩 받아 대학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전투였습니다.

나는 점차 내 현실의 문제에서 내 밖의 문제들로 관심을 넓혀갔습니다.

1960년대 대한민국은 군사독재정권이었습니다. 나는 그 당시 학생 지도자로서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면서 감옥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일을 통해서 민주화 운동을 통해서 나는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자유, 인간의 기본권 등을 깊이 생각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난을 처절히 경험한 나는 빈곤이 인간의 삶은 물론이지만 영혼까지 파괴하는 폭력이라는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나는 경제적 번영 없이는 국가는 물론 나 자신에게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감옥을 나온 뒤 나는 운명 같은 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 던지겠다고 결심하고, 종업원이 채 100명도 되지 않던 작은 건설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어렵게 취업했습니다. 그 당시 독재정권은 제가 조그만 일자리 가는 것도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나는 열사의 사막에서 동토의 시베리아까지 세계 곳곳을 다녔고, 회사는 자동차와 조선 분야에까지 진출하면서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내가 입사할 때 종업원이 100명 되지 않았던 회사가 내가 그만둘 때 16만 명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노력으로 내 개인도 가난도 벗어났고 국가의 경제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었고, 큰 보람으로 느끼며 일을 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과 함께 성장해 온 나의 삶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해하시겠습니까?

나는 비록 매우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고 일자리도 주지 않았지만 나는 조국에 감사하고, 나와 함께 가난한 시대를 피땀으로 극복해 온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대한민국이 노르웨이에 대해 또 하나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노르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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